카테고리 없음

26살에 아줌마가 되었다.

도쿄줌마 2023. 6. 1. 15:39

아줌마: 단순히 애가 있고 없고,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제가 저를 아줌마라 지칭하는 단어로 아줌마란 워딩에 불편함을 느끼신 분께는 사과드립니다.

만 26살에 엄마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만 나이가 기준이라 내 피드의 모든 나이는 만 나이임을 미리 공지함.

19살에 일본에 와서 대학을 다니고

23살에 취업을 했다.

24살에 결혼을 했고

26살에 애엄마가 되었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남편이 너무 좋아서 빨리 결혼했다고는 말. 잇. 못

 

운빨도 타고나는 것일까?

 

10대, 20대의 나는 모든 게 불안한 상태였다. 한국에서는 내 성적으로 도저히 인서울 대학에 갈 수 없어서 일찍이 일본유학을 결심했다. 동네 일본어 학원에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 종로의 유명 일본 유학 전문 학원으로 옮기는 걸 보고 따라 옮겼다. 내 일본어 실력은 친구들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바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친구들이랑 학원 끝나면 종로를 누비고 다니기 바빴다. 그렇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에 흥미도 많았고 그 시절 일본어 입문 자라면 다들 좋아했을 법한 쟈니스 아이돌을 누구보다 좋아했다.

 

그렇게 대충대충 학원을 다니다가, 대학 입시 시험을 치르게 되었고 결과는 물 보듯 뻔했다.

열심히 했던 친구들은 목표로 했던 대학들에 입학했고 나는 운이 좋게, 턱걸이로 중간권 대학에 붙었다.

 

어중간하게 살아온 삶은, 뭐든지 늘 어중간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성적은 바닥을 쳤다. 그렇지만 노는 거 하나는 열심히 해왔던 것 같다. 같은 과 친구들이랑 매일같이 이자카야를 돌며 술을 마셨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 학교에서는 제일 발이 넓은 주책맞은 한국인으로 통했다.

대학교 4학년때는 풀 학점을 취득하지 못하면 낙제가 되어, 한 학기를 더 다니게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학교 1-3학년 동안 아침 수업은 거의 나가본 적이 없었고, 넓은 인맥덕에 친구들이 열심히 필기한 노트들로 겨우 학점을 이어나갔다. 4학년때는 시험만으로는 학점을 모두 취득하기 어려워 아침수업도 열심히 들었다.

마지막 학기에 벼락치기로 풀 학점을 취득하였고, 대충 쓴 졸업논문은 운 좋게 좋은 교수님을 만나 고학점을 받아 무사히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운 좋게 취업

 내 꿈은 어릴 적부터 승무원이었다. 어릴 적부터 집안 사정상 일본을 오가는 일이 잦았고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동경하게 되어 중학교 때부터 승무원이 되고 싶다 꿈꿨다.

(아이돌도 하고 싶었고 아나운서도 하고 싶었는데 허들이 너무 높아서 일찍이 포기)

취업에 관해서는 100% 운빨은 아니었던 게 대학생활 중에는 간간히 승무원 준비 학원을 다니며 꿈이 같은 친구들끼리 모여 스터디를 하였고, 취업하고자 하는 회사 설명회를 밥먹듯이 다니며, 항공사의 인사과 사람들과 여러 번 마주친 덕에 면접 시에도 나를 알아보는 분이 계셨다. 회사의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어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에 나를 끼워 맞췄다.

대학 친구들은 10군데 이상의 회사에 이력서를 넣으며 면접을 돌아다녔고 나는 딱 3군데에 집중한 결과, 1 지망이었던 항공사에 운 좋게 취업을 하게 되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승무원의 꿈을 이뤘지만 늘 불안했다. 느슨했던 내 20년간의 생활 패턴을 철저히 회사에 맞추는 것도 힘들었고, 자유로웠던 인간관계도 상하관계를 중시하는 회사에 적응하리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만연하게 동경해 왔던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아무것도 아니었고 점점 번아웃이 오기 시작했다.

대학교 4학년때부터 교제해 온 지금의 남편과도 일로 인해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어 더욱 불안했다.

일도 불안하고 연애도 불안......... 곧 뜨거운 용암을 뿜어낼 듯 열이 오른 휴화산 같은 매일매일을 보내던 찰나 터질게 터져버렸다.

공황장애

숨이 안 쉬어지고 밤에 잠이 안오며 매일 아침 출근길에는 감옥에 끌려가 듯 우울하고 속이 안 좋았다.

공황장애가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결혼도 결심했다.

인서울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도망쳤던 그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결혼이라는 것으로 도피했다.

 

도피자 인생

당시 남자친구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늘 바빴다. 나도 바쁜 비행일로 서로 일정을 맞춰 데이트를 하기 힘들었고, 회사를 계속 다니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나 한국 갈래


협박 아닌 협박으로 운 좋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준비가 안된 채로, 미숙한 정신으로, 불안한 상태로 도망치듯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승무원을 해보니, 전업주부, 엄마가 되고 싶었고 어딘가에 정착되고 싶은 마음이 컸던지라 결혼 2년 차에 엄마가 되었다. 미숙하고 불안한 엄마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