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한정된 사람만이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시간은 부자나 일반인이나 모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 같. 이 주어지고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부자는 시간이 없다고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시간이 넘쳐난다. 어릴 적엔 내 시간을 부자에게 팔고 싶다고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시간은 금이다. 익히 들어 머리로는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시간이 평생 이대로 내 것일 것이라 생각했다.
20대 중후반에 출산을 하고 정신없이 육아와 살림을 하다 보니 잠깐의 여유 시간에는 인스타그램에 나의 일상을 거창하게 포장하기 바빴고, 아이를 재우고 나서는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며 저녁 늦게까지 시간을 썼다.
남편이 육아를 도맡아주는 반나절의 자유시간은 친구와 쇼핑을 가거나, 저녁에 술을 마시러 나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해서는 소위 말하는 맘친들과 점심시간에 인스타에 올리기 좋은 멋있고 비싼 맛집을 찾아다녔고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해외여행을 다니며 인스타의 나만의 세계에 자랑을 해야 했다.
일이 늘 바빴던 남편은 저녁 귀가가 늦어, 동네 맛집에서 매일 아이들과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이 분유, 이유식을 먹을 땐 아이들 먹을 것을 싸가지고 나갔고, 남편 저녁밥을 포장해서 들어왔다. 남편이 바빴던 탓에 이런 사치스러운 낭비들을 묵인해 주었던 것 같았다.
그러다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고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되었고, 나의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점심시간의 여유도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는 바람에 눈치 보여 점차 횟수가 줄어들었다. 매 끼니도 차려주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남편이 출근을 안 하는 덕에(?) 역에서 도보 1분 거리의 역세권 집을 비싸게 렌트해서 살 필요가 없어졌고, 그 돈으로 역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무도 관심 없는 나만의 세계의 인스타그램은 점점 평범해져 갔고, 인스타그램을 끊기로 했다.
SNS로 수익을 올리는 인플루언서도 아니었는데 단지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한 쇼핑과 여행, 사치가 가득한 피드를 지우고 나니 모든 게 허무해졌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의 기쁨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순간 사라졌고, 항상 욕구가 가득한 상태였다. 지금에 와서 보니 남은 건 하나도 없었던 시간이었다. 무리한 소비 덕분에 아이들과 여행도 많이 다녔지만 아이들은 기억이 가물가물 한 듯하다.
인스타그램을 내려놓고 김미경 선생님이나 법륜 스님의 강의를 들으며 내면을 단단하게 키우는 연습을 반복했다.
그렇게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중,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계기로 7년 만에 재취업을 하였다.
9시 출근-6시 퇴근으로 자유시간은 점심시간 한 시간, 집에 와서 밀린 집안일과 아이들을 재우는데 내 하루를 다 쏟아붓고 나니, 점심시간 한 시간과 아이들이 자고 나서의 시간들이 너무 소중해졌다.
10대, 20대에는 나이 든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고, 헛되이 보낸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나니 30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내 시간을 돈보다 더 철저히 관리하기로 했다.
나는 지난주부터 시간기록부를 쓰기 시작했다. 가계부도 못쓰는 게으름뱅이 내가 과연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나중일은 그냥 생각하지 않고 내 하루 일과를 돌아보기로 했다.
(7시가 아닌 6시 50분에 일어나는 것은 적어도 7시를 넘지 않기 위한 안전빵의 10분이다.)
화장, 단장, 애들 옷 입히고, 대충 아침 챙겨주고 하면 실질적 한 시간이지만 체감상 20분의 느낌이다.
아이들 재우는데 시간을 많이 쓰고 있다.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거나 퍼즐놀이를 하다가 잔다.
22:30분 이후에는 또 집을 치우고 빨래를 개면서 유튜브나 드라마를 보고 있다.
중간중간 10분 정도 여유가 있을 수 있는데 틈새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는 앞으로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주말에는 늦잠을 자기보단 아침 일찍 요가나 요리교실을 미리 예약해 둬서 강제로 일어나게 만들었더니 하루를 길게 쓰는 것 같고, 다음날의 일정을 생각하니 전날 무리해서 늦게까지 깨어있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제 내 시간을 남들보다 더 많이 쓸 것이다. 시간을 생산성 있게 쓰되 가치 없는 일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기로 하였다.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마약과 같은 존재들과도 점점 헤어질 준비를 할 것이다.
이렇게 거창한 계획을 하고 나니 내년의 내 모습이 너무 기대된다.